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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은 코리안 아메리칸에 주어진 ‘문화시민권’

“내 아들은 자신의 세계에 대해 하나의 감각만을 가지고 성장하는 것이 내 희망이기도 했다. 하나의 목소리로 이루어진 삶, 그래야만 아이의 반은 노란색인 넓적한 얼굴로는 얻을 수 없는 권위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이창래 작)’에서 주인공 헨리 박은 백인 아내와 낳은 혼혈 아들이 정체성 혼란 없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한글학교에 보내지 않기로 한다. 한국에서는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이 1995년 출간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케이팝(K-POP)과 한류는 ‘코리안 아메리칸’(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버몬트주에서 성장한 입양인 레이엔 윌리엄스 씨가 태어나 처음 ‘한인’이라는 정체성에 대해 생각했던 계기는 “10살쯤 디즈니 월드에서”였다. 중국과 일본 문화 전시관이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고, 부모님은 그에게 한복을 사입히고 만두와 잡채 요리를 배워 함께 먹었지만 얼마 못 가 시들해졌다. “그때 이후로는 내가 한인이라는 것이 싫었다. 누군가 내 한국 이름이자 미들 네임인 ‘성희’를 부르면 화를 내기도 했다. 그냥 백인 친구들과 어울리기(fit in)를 원했다”는 게 윌리엄스 씨의 말이다. 그는 애틀랜타에서 대학을 졸업한 직후였던 2000년 한 시민단체 봉사자로 조지아주 도라빌에 전단지를 부착하러 갔다가 애틀랜타에 한인타운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한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는 ‘강남스타일’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중국에서 왔니, 아니면 일본?’이라는 질문을 받는 게 싫었다”고 털어놓는다. “한국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다. “케이팝과 한류 열풍이 불면서 이젠 한인이라는 사실이 ‘쿨’(Cool)한 것이 됐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씨는 현재 매주 도라빌에서 모이는 한국어 학습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다. 둘루스 한국문화원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39세 혼혈인 조 라니에리 씨는 “우리 집에서는 항상 김치 냄새가 나서 친구들을 데려오는 게 부끄러웠다”고 청소년 시절을 회상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지금 30~40대의 한인 2세 대부분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케이팝 덕분에 한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 하는 이야기는 점차 과거로 사라지고 있다. 미국의 ‘소수 문화권’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던 한인 청소년들은 오늘 날 케이팝 열풍을 통해 ‘문화적 시민권’을 부여받은 것이다. 조지아주 스와니에 있는 피치트리리지 고등학교의 제니퍼 페로 부교장은 오리건주의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했고, 아시안이 거의 없었던 오리건의 작은 고등학교의 교장까지 지낸 후, 애틀랜타로 와서 한인들과 처음 교류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달 15일 이 학교에서 열린 대학입시 박람회인 ‘아시안 아메리칸 칼리지페어’에서는 인근 센트럴 포사이스 고등학교에 다니는 백인 여학생 2명이 케이팝 댄스 공연을 펼쳤다. 이들의 공연을 지켜보던 페로 교장은 “내가 어릴 적에는 백인이 되고 싶어 한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정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제는 백인 아이들이 한국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솔직히 좀 헷갈린다”며 웃음 지었다. 한인 2세 청소년들이나 댄스 공연을 펼친 백인 학생 모두에게 케이팝이라는 문화적 시민권이 언젠가는 ‘코리언 드림’으로 다가오길 기대한다. 조현범 기자

2018-10-03

미국에서 ‘K-POP 세대’ 자란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추억의 아메리칸 팝송 한두 곡쯤은 알고 있다. 청소년 시절, 알아듣지 못해도, 혹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더 낭만적으로 느껴졌던 그 감성을 오늘날 미국인 청소년들은 케이팝(K-POP)으로 경험하고 있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한인타운에서 멀지 않은 커밍 시 포사이스 센트럴 고등학교의 12학년 루치아 아레코 양은 “케이팝 가수들의 퍼포먼스 수준은 (미국 가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열변을 토한다. 그녀의 케이팝 사랑은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한두 소절 따라부르는 데 그치지 않는다.<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 루치아의 침실 벽은 케이팝 스타들의 포스터와 브로마이드로 온통 채워져 있다. 2년 동안 40여 건의 케이팝 커버 비디오를 올린 유튜브 채널은 조회 수 10만 회를 넘겼고, 독학으로 공부한 한국어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자연스러울 정도에 이르렀다. 지난해 단짝 친구 사만사 리차드슨 양과 텍사스에서 열린 BTS 공연을 다녀온 이후, 루치아와 사만사는 학교에서 ‘한국문화 즐기기 클럽(Korean Culture Appreciation Club)’을 만들어 공동 회장으로 이끌고 있다. 이 고등학교에는 아시안 학생들이 거의 없지만 ‘케이팝 팬’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운동부를 주축으로 하는 ‘작스’, 공부벌레 ‘너드’, 피어싱과 검은 옷을 좋아하는 ‘고스’처럼 하나의 파벌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특히, 연극부와 문학 클럽 학생 중에 케이팝 팬이 많다. 사만사는 “나도 어릴 때부터 연극을 해왔는데, 생각해보니 연극부 학생 중에는 케이팝을 안듣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루치아와 사만사가 말하는 케이팝의 매력은 문학적 즐거움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참을성 있게 낮선 언어를 공부하고, 좋아하는 노래의 가사를 이해하는 그 기쁨. 이런 즐거움을 전 세계의 친구들과 나눌 수도 있다. 케이팝 그룹 중에서도 BTS가 유달리 성공할 수 있는 이유 역시 “정체성이나 학교생활같이 고등학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가 가사에 녹아있기 때문인 것 같다”는 게 루치아의 생각이다. 애틀랜타에 사는 인터넷 언론 '더 도트'의 콜레트 베네트 기자는 “BTS의 음악은 신나고 어깨가 들썩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젊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분명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며 “(2018년 초 발매한) ‘러브 유어 셀프’라는 슬로건이 대표적”이라고 ‘빌보드’에 기고한 글에서 분석했다.… 스타에 대한 동경은 모방으로 이어진다. 사만사는 여성으로서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화장을 유튜브로 처음 배웠다. 다름 아닌 한국식 화장법이었다. 그는 “한국식 패션이랑 메이크업이 좋다. 한국식으로 아이 메이크업을 해봤는데, 눈 모양이 달라서 그런지 어울리진 않더라”라며 웃었다. '케이팝'이라는 용어는 퍼포먼스에 방점이 찍힌 한국의 아이돌 음악의 카테고리로 통용되지만, 국경과 언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특유의 글로벌 팬 문화 또한 문화 현상으로서의 케이팝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이다. ‘응답하라’ 드라마 시리즈가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유는 ‘뜨겁고 순수했던, 그래서 시리도록 그리운 그 시절. 들리는가, 들린다면 응답하라’라는 대사에 함축돼 있다. 루치아나 사만사처럼 미국에서 성장하는 ‘케이팝 세대’의 미국 청소년들에게 2018년은 평생 간직할 진한 추억으로 남겨질 듯 하다. 조현범 기자

201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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